그렇게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콜라주된 모든 요소들은 캔버스의 어느 방향으로도 관람객을 이끈다.
전문 中 발췌
1912년 피카소가 프린트한 등나무 문양 종이를 붙이고 그림에 밧줄을 감았다. 그랬더니 원래는 보고 그렸어야 할 대상을 아예 가져다 붙인 ‘현실’적인 감각이 오히려 독특했다. 그렇게 피카소의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1912년 작) 은 ‘콜라주’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이 후에도 벽지나 각종 종이를 이어붙이던 ‘파피에 콜레(Paper collé)’ 방식은 브라크, 피카소를 시작으로 점차 사랑받았다. [이미지 출처: pablopicasso.org]
무엇보다 사진기의 발명 때문에 콜라주를 향한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이제 그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건 일부 예술가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를 캔버스 위에 나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던 중, 콜라주는 그 ‘무언가’를 담아낼 새로운 지평 중 하나였다.
콜라주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기에도 적합했다. 어느 예술가는 전혀 다른 여러 개의 사진들을 분해해 다시 이어붙여 해학적이거나 날카로운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그래서 사진 기술 발달과 함게 생생한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메시지가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퍼질 수 있었다. 사진끼리의 결합으로 만드는 콜라주는 사회에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도 쓰였다.
콜라주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미 완성되었던 재료에서 의미와 형식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점, 러프해 보이지만 고도의 구성 능력을 가질 수록 더 빛난다는 점. 국내에도 이런 점에 매료된 예술가가 있다.
아티스트 선호탄 Sunhotan은 우연한 계기로 콜라주 작품을 마주한 뒤부터 미친듯이 재료를 찢고 붙이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영감을 받으면 즉시 작업에 착수하기 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최근 음악씬은 물론, 패션 브랜드와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이름을 알리는 동시에 그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미술계에 영향력을 키우는 작가로도 알려지고 있다.
예술가의 시선에서 보는 콜라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의미를 담아 콜라주 기법에 몰입하고 있는 걸까. 최근 뮤지션 Jayci Yucca 와의 협업으로 성수동을 달궜던 선호탄과 직접 대화해보았다.
뮤지션 Jayci Yucca 와의 콜라보 협업 행사 중 일부인 공연과 전시가 동시에 진행됐던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전시 아티스트로서는 물론 아트 디렉터로도 참여했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 Jayci Yucca의 음악 앨범 커버 및 여러 아트 워크를 오랫동안 작업하며 그의 캐릭터 “The Last Boy”를 본인의 비주얼적 페르소나로 적극 활용하여 세계관을 넓힌 이야기도 즐거웠다.
그리고 음악가와의 협업 외에도 셀렉숍 DiiiiiiD, NIKE 등 과도 함께 일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의 참여자들과 관람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화를 이어가며 선호탄의 여러 이력을 들을 수록 콜라주에 대한 선호탄의 시선이 더욱 궁금해졌다.
bvoid: (작가님이 보기에) 관람객들은 ‘콜라주’ 작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Sunhotan: 브랜드와 협업할 때는 작업 그대로를 바라보는데, 갤러리에서는 기법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작품의 안정성에 관심이 많다. 재료가 잘 붙여져 있는 거냐. 시간 지나도 안 떼어지냐 같은.
갤러리의 특성상 이해는 한다. 그래서 코팅 기술을 연구했다. 이렇게 접착에 대한 이슈가 있다. 근데 작년 프리즈 서울 에서 본 해외의 콜라주 작업은 너덜너덜하고 입체감 강한 작업이 많았다.
그 영향으로 나도 안정성 있게 가되 러프함은 잃지 않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엔 좀 더 작업적인 확장을 가져가고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도 작업하기 시작했다.
bvoid: 콜라주 작업과 회화 그림의 가장 큰 차이는?
Sunhotan: 콜라주 중에서도 특히 참고하고 있는 포토몽타주는 미디어의 선전물(프로파간다)로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 더하기 사진으로 풍자, 해학의 개념으로 등장했던 기법이라 생각한다. 당시 여러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던 시기여서 자본주의 나 사회주의를 혹은 신문, 잡지 같은 미디어들을 비판 혹은 선전하면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와 친하다. 이렇듯 콜라주는 사진 기술이나 사회나 산업 전체와 굉장히 맞닿아 있다.
bvoid: 작가님은 작업을 통해 직접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 적 있나?
Sunhotan: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스스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내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부모님이 어느 날은 ‘모든 걸 충족할 수 있는 작업은 없다.’라는 위로를 해주셨다. 이 생각을 되뇐 상태여서 그랬을까 서점에 갔더니 유독 자존감을 북돋는 책 제목을 많이 발견했다. '나는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을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 전체가 자주 하는 생각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예전에 ‘Love is all’이라는 슬로건을 만들던 그 마인드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앞으로 더욱 긍정적인 메시지와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 것이다. 다시 이렇게 되새겼다.
bvoid: 캐치프라이즈 ‘Love is all’에 대한 이야기를 더 부탁한다.
Sunhotan: 댓가 없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만들었던 말이다. 사랑을 얻고 싶었던 인간 김선호에 대한 이야기가 발전해 캐치프라이즈가 되었다.
bvoid: 작품에 직접 물감을 칠하고 글을 쓰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더한 이유는?
Sunhotan: 일러스트, 회화, 피규어 작가들 중 일부는 자신을 상징하는 시그니처가 있다. 그래서 나도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텍스트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글씨를 못 쓴다고 많이 혼났는데, 지금은 이 글씨체가 내 시그니처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bvoid: 근래에는 작품 프레임 전체에 커다란 형태가 쓰이는데, 이 것은 어떤 의미인가?
Sunhotan: 2022년의 목표는 시그니처 만들기였다. 여러 작가와 교류하기 시작하며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었다.
bvoid: 작품 제목에는 어떤 의미를 넣는가?
Sunhotan: 나는 음악을 오래 해왔다, 10년 간 해왔고, 가사를 많이 썼었다. 그래서 은유를 좋아한다. 이번 Yucca랑 하는 건 ‘졸업’이라 이름 지은 것처럼. 콜라주 자체가 많은 이미지를 쓰기 때문에, 제목은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특히 30대부터 취향이 확고해져서 이제 기반이 생긴 뒤로 작업이 수월해졌다. 특히 작년에는 스트릿 컬쳐와 힙합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인지하고 작품에 많이 녹이려 노력했다.
무엇 보다 매년마다 갱신되는 자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걸 작품에 녹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bvoid: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는가?
Sunhotan: 그림으로 할말을 전하기 위해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내가 관람객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펀치라인 같이 관통하는. 쉽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서 비유와 직관적인 은유도 같은 맥락으로 사용한다.
선호탄은 과거 힙합씬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작품에 녹이려 노력했다. 리듬과 선율에 의미를 더하는 노래 가사처럼, 콜라주된 이미지 위에 단어를 분해하고 집어넣었다. 평소 노래를 즐겨듣고 가사에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호탄의 작품을 통해서 왠지모를 청각적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대중 음악을 들으며 선호탄의 작품을 감상하면 이미지는 더욱 리드미컬하게 보인다.
그렇게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콜라주된 모든 요소들은 캔버스의 어느 방향으로도 관람객을 이끈다. 왜냐면 콜라주는 예술가들의 역사에서 강한 임펙트를 남긴 기법이다. 붓 - 물감 - 팔레트 - 캔버스 위를 전전하던 예술가들은 콜라주로 형태와 표현의 자유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맛 봤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재료로 표현한다 한들 작업의 의도까지 직관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다. 작가의 방식에 맞게 선호탄처럼 의도하는 바에 맞춰 직접적인 장치를 구성할 수 있다.
매우 다양한 형식의 세계에서 단단히 자리잡은 콜라주는, 이해할 수록 다채롭고 볼 수록 색다르다. 우린 자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